예전에 방송에서 잡담겸 역사이야기겸 했던 내용이 있었는데
킹덤컴 이라는 게임 발매 기념으로 그 게임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의 프리퀄인
카노사의 굴욕부터 카톨릭의 몰락으로 얀후스가 등장하는 역사까지를 간략하게 이야기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중 하나인 삼국지가 있다면
유럽에서는 사실상 세계대전의 프리퀄같은 전쟁인 30년전쟁이 있고
그 둘은 같은 선상처럼 보면서 정말 좋아하는 시기라고 했던 적도 있습니다.
그때는 킹덤컴이라는 게임에 맞춰서만 역사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그걸 확장해서
저의 가치관 중 하나를 만드는 음모론을 한번 소개해볼까합니다.
일단 그때 했던 역사이야기를 글로도 다시 써볼께요.
제가 하는 유튜브 라이브들을 편집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는 글쓰는것도 좋아하니까 정리겸 간략하게 다시 글로써봅니다.
예상으로는 3편에 걸쳐서 이번 음모론을 완성하지 않을까합니다.
미리 어떤식으로 진행할지에 대해 간략하게 써보자면
1편은 유럽 역사편 입니다.
사실 유럽역사를 좋아하고 그나마 제일 대중적이라고 생각해서 유럽역사를 예시로 드는것뿐.
어차피 인간세상 다 사람사는곳이고 돌고 돌아 똑같은거 반복하는 잘못을 반복하는건 여전하기에
중국역사에서도 제가 또 엄청 좋아하는 파트인 청말민초를 설명해도 되지만
2편의 게임편 흐름에 맞추기위해 유럽역사편을 시작으로 했습니다.
방송에서만 간간히 말했는데 제가 역사를 좋아하며 이것저것 책을 다 뒤져보게 된 계기가 게임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첫 계기가 된 대항해시대 라는 게임은 앞서 소개했으니 이번에는 다른 게임을 예시로
그러면서도 제가 사춘기 시절 처음으로 그 게임을 접하면서
저의 인생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게임 때문에
1편은 유럽역사
2편은 게임
3편은 그래서 앞으로 우리시대는?
으로 마무리 되는 음모론의 첫번째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제가 유럽역사에서도 엄청 좋아하는 30년전쟁을 설명하려면
그에 앞서 도대체 교황청은 왜 몰락하고 구교와 신교를 명분으로 유럽 전체가 전쟁을 하게되었나!
마치 삼국지에서 왜 진시황이 통일한 이후 하나의 중국이었는데 삼국으로 나뉘게 되는가?
황건적이라는 형태의 민중반란이 시작 되었는가!
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1000년 경의 카노사굴욕부터 시작해야합니다.
방송에서 했던 이야기는 정말 온갖 잡담을 다 섞으면서 투자에 도움되는 관점에서 이야기했었다면
이번에는 음모론에 초점을 맞춰서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보도록하겠습니다.

107년 신성로마 제국 황제인 하인리히 4세는 자국의 성직자들을 자기 입맛대로 입명했다는 이유로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던 것에 대한 대가로 직접 로마 교황청으로 가서 눈덮인 카노사 성문 밖에서
참회자 옷을 입고 맨발로 서서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고
당시 교황인 고레고리오 7세가 용서를 받아주며 파문을 취소했던 사건입니다.
파문이 왜 엄청난 위협이었냐면 당시 유럽에서 교황청에서 파문을 당하면 이교도가 되는것이고
이건 주변 왕들부터 자국 대귀족들에게 가장 큰 전쟁공격명분이 되기 때문에
다굴에는 장사없듯이 파문은 곧 왕족가문의 멸망을 뜻했었습니다.
이 배경에는 로마 멸망 이후로 1000년 정도까지 유럽의 절대권력자는 교황이었으나
점점 경제발전과 기술력의 발전등등으로 각 유럽의 왕들은 점점 세력이 키우고 힘이 강해졌으며
은근슬쩍 혹은 대놓고 교황청의 권력을 살살 건드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 왕들은 대놓고 성직자 자리를 사고팔지 않나 수도원에 들어간 귀족여자들과 간통하지 않나
대놓고 신성모독을 밥먹듯이 했고
섬나라 해적놈들인 잉글랜드 왕은 아예 교황청에 충성하길 거부했습니다.
스페인은 이미 이슬람 세력권이라 교황의 영향력 자체가 씨알도 안먹히는 이교도의 저주받은땅 취급이었구요.
그럼 왜 신성로마 제국 황제에게만 이랬느냐!
가장 가까운데 그 중에서 중앙집권의 왕권이 상대적으로 제일 약했고
영주들은 알프스산맥을 거치지 않고 로마로 이동이 가능했기에...
는 줄여서 그냥 제일 만만했습니다.
사실 로마 멸망 이후 1000년까지 약 600년간 교황청이 충분히 해먹을만큼 해먹은거죠.
어쨌든 권력에 위기를 느낀 교황청은 기강을 한번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유럽에서는 내가 최고권력자다! 라는걸 다시 입증을 했지만
이게 바로 유럽역사에서 하나의 큰 빅뱅의 시작이었습니다.
카노사의 굴욕은 밑에서 올라오는 신흥세력들의 성장을 두려워한 최고권력자가
제일만만한놈 기강을 잡아서 본보기를 보여주려한 사건이라고 외우세요.
이 사건을 계기로 유럽의 크고작은 왕부터 대귀족들이 점점 교황청에 대한 신뢰가 의심과 경계로 돌아서길 시작합니다.
교황청도 이런 흐름을 읽었는지 하나의 해결책을 내놓는데
그게 바로 십자군 원정입니다.
카노사의 굴욕을 통해서 당장은 유럽왕들도 교황청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이미 불순한 움직임들이 보였고
애초에 그런 근본적인 이유가 유럽 왕들이 경제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으며 이제 유럽이라는땅은 너무 좁았으며
더 큰 시장이 필요했었고 이 힘을 발산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이대로있다가는 교황청이 잡아먹히게 생겼으니 이 에너지를 다른곳으로 뿜어내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게 바로 예루살렘 성지탈환을 명분으로 하는 이슬람 세력권에 대한 도전이었어요.
교황청의 입장에서는 왕들의 힘을 뺄 필요가 있었으니 전쟁을 일으켜야할 이유가 있었고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이미 빤히 보이는 유럽은 전부 교황세력땅이었으니 더 많은 신자 확보를 위해서는
이교도들에게 기독교를 배달해야만 했었습니다.
유럽왕들도 그들의 가문 내지는 자신의 충신들에게 줄 보답이 유럽만으로는 부족했었기에
새로운 땅. 경제적인 시장이 필요했기에 전쟁을 해야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전쟁이 필요한 이유는 폭발적인 경제성장. 이것도 외우세요.
서로의 이해가 일치해서 유럽은 이슬람을 상대로 십자군 원정이라는 전쟁을 200여년간 진행합니다.
교황청의 목표는 성공합니다.
십자군 원정으로 인해 유럽왕들은 점점 분열하고 힘이 약해집니다.
무리한 원정으로 기존왕들이 다른 가문에 의해 멸망해서 사라지는 일도 발생합니다.
대표적으로 잉글랜는 잉글랜드 역사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윌리엄이 세운 노르만 왕조에서
프랑스 귀족 출신인 플랜태저넷 왕조로 바뀌는데 사자심왕 리차드 1세가 바로 이 가문 출신입니다.
이걸로 안끝나고 이후 백년전쟁등으로 또 한번 왕조가 몰락하고 잉글랜드 자체가 박살나면서 튜더가문으로 넘어가기까지합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카페왕조에서 발루아 왕조로 교체되며
신성로마제국은 제국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정도로 분열되서 아예 게르만 왕조가 사실상 끝나고
체코 기반의 룩셈부르크 가문과
스위스부근의 영주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촌장 수준이었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갈라먹는 지경에 이릅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교황청의 왕들 견제는 대성공을 거두고 영원히 절대권력을 유지할 것.... 같았으나!!
왕들도 고스돕쳐서 그정도 힘과 경제력을 얻어낸게 아니거든요!
참고로 프랑스 왕조도 교체가 되었지만 교체되기 직전 카페왕조 마지막 불꽃인 필립 4세도
교황청에 필살기를 날리고 교황청도 같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교황청도 왕도 서로 견제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후 겉으로는 손잡고 십자군 원정을 시작했지만
그 결과 왕족도 교황청도 박살나게 됐죠.
마치 현재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는척하지만 동맹국들 잡아먹는....
은 3부에서 알아보기로 하고~~!!
우리는 바로 유럽왕들도 무너지지만 교황청이 무너지는 카페왕조 마지막 불꽃 필립4세를 조금 알아봐야합니다.
제가 아마 킹덤컴 배경 역사이야기 시작을 필립4세로 시작했을거예요.
7080 6차 교육과정 배웠던 우리들은 교과서에서 카노사의 굴욕과 아비뇽의 유수를 같이 붙여서
번개불에 콩 볶아먹듯이 빠르게 배우고 넘어갔을겁니다.
다른 학교는 자세하게 배웠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수업시간에 자서 그런가
그냥 시험을 보기위해서 대충 외우고 지나가는 것이 다였던것 같았으나
당시 저는 이미 유럽역사 빠순이였기 때문에 관련 서적을 먼나라 이웃나라부터 이야기XX사 등등
오만 역사책과 소설을 수업 내팽개치고 읽어대던 시기였고 이것 또한 너무 재미있게 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릇 20세기를 살아가는 모범적인 학생이라면 학교의 가르침에만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공부 목표 설정과 수업시간마저 쌩까는 추진력을 가져야 하는것이 미덕!
십자군 원정등으로 유럽의 왕족들이 점차 몰락을 하자 교황청은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면죄부를 대놓고 팔아대고 성직자 자리도 사고 팔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게 바로 이즈음입니다.
베르세르크라는 만화에서 나오는 교회의 온갖 악행의 시작의 대부분이 여기서 시작하죠.
이쯤되면 왕이나 귀족만이 아니고 민간인들조차 슬슬 교황청에 학을떼기 시작을 합니다.
물론 교황청의 대안도 없었고 이슬람세력과 전쟁을 하는 중이라
어디다 하소연 할 곳도 없었지만 말이죠.
역시 내부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더더욱 가열차게 타락하며 자기 욕심 채우기에는
전쟁만한게 없습니다. 이것도 외우세요.
아무튼 교황청이 밑도 끝도 없이 타락해가는 1300년대 어느날
당시 교황 자리는 사실상 로마의 유력가문 몇개가 돌려먹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균열이 깨지기 시작하는게 보니파시오 8세 때입니다.
보니파시오 8세는 어느교황들처럼 자신을 교황으로 뽑아주면 너희 가문의 이권 보장은 물론
십자군 원정 꿀단지에 빨대 몇개 더 꽂아주겠다등등으로 현혹하여
교황이 되는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보니파시오 8세는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교황이 되자마자 약속을 지키는게 아니라
경쟁자 가문을 죄다 숙청해버립니다.
왜 기존 교황들은 안그랬는지가 더 궁금할지경인데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약속을 안지키는것이 최고권력자의 미덕아닐까요?
기존 교황들도 막장이었지만 보니파시오 8세는 한술 더뜹니다.

기존 교황들이 단순하게 면죄부를 팔았다면 보니파시오 8세는 그 이름도 악명높은 이중 삼중과금 면죄부!
면제부를 사기위한 입장권을 추첨하기 위한 이벤트 참여권까지 팔아버리는
천재적인 상술을 만듭니다.
심지어 현기차 뺨 후려치는 옵션질 면죄부로 로마 30일 거주권. 지옥불 온도 낮춰주는 옵션. 아예 고통 못느끼는 옵션질을
세세하게 나눠서 팔지 않나.
이 옵션도 사려면 성당에 방문해서 지성으로 기도를 드려야하는 자리세까지 야무지게 받아먹어서
그돈씨 면죄부 강화권. 그돈씨 풀옵션 면죄부. 그돈씨 수도사 자리사기. 그돈씨 기도를 대신 해주는 노예를 사면 축복 8배 이벤트.
등등 말도 안되는 면죄부 팔이를 하는가 하면.
면세부만 이렇게 세세하게 팔아먹었으면 악당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트루자본주의자의 시조새라고 불리며 지금도 미국에서 물고 빨고 했을겁니다.
귀족 유부녀들만 모아서 파티하고 간통하고 XX 하고 주지육림 유럽판을 개최하거나
심지어 이 유부녀들을 자기 마음대로 짝을 바꿔주며 자녀 출산하면 아이 아버지가 누군지 신경쓰지 않고 키우기까지!
조조가 이걸 알았으면 중국 승상 때려치고 유럽으로 이민가서 교황청 대주교가 됐을겁니다.
여기서만 끝났으면 그냥 중국황제랑 비슷한데?로 끝났겠지만
동성애 3P 이벤트라거나 천한것들은 죽어봐야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기는 커녕 부활따위도 없다 라거나
하나님이 어딨냐? 천국이고 에덴동산이고 다 거짓이고 내가 있는 여기가 바로 인세천국이다.
같은 소리까지 했다는데 아무래도 뒷부분은 필립 4세가 교황을 간접살해를 하면서
그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거짓으로 꾸며냈을거라는게 학계의 정설이지만
오피셜이 뭘 알겠어요?
저런말을 해도 충분히 그랬을것! 이라고 믿을만큼 보니파시오 8세는 막장이었습니다.
그럼 필립 4세는 왜 교황청을 공격했을까요?
정의의 화신이라서??
당연히 아니죠.
필립 4세는 벨기에 땅인 플랑드르(현 플라망) 라는 지역을 너무너무 갖고 싶었습니다.

당시 플랑드르의 핵심지역은 브뤼허와 헨트 지역이었고
칼레는 잉글랜드 땅이었습니다.
플랑드르는 그때 플랑드르 백국이라고 불리며 백작이 왕처럼 군림하는 지역이었는데
기본적으로 방직이 발달해서 옷감을 잉글랜드 프랑스에 잘팔아먹었고
잉글랜드와 프랑스를 두고 삼각무역으로 돈을 쓸어담으며 상업적으로 매우 발전한 도시였어요.
대항해시대에서도 이 부분이 잘 반영되서 이 지역에서 유리구슬과 양모와 레이스 잔뜩 사고 영국 대포까지 싹 쓸어서
오스만쪽에 팔아치우고 거기서 캐비어와 어쩌구 저쩌구들 사서 또 팔고 반복...
아무튼 그래서 필립 4세는 저 지역을 차지하면서 돈도 갖고
동시에 자꾸 프랑스 땅에 영역을 키우는 잉글랜드를 감싸먹는 형태로
끝에가서는 칼레땅도 프랑스가 먹어치웠으면 하는 속셈이었던거죠.
그래퍼 벨기에를 공격하긴 해야하는데
당시 십자군 원정에 이어 신성로마제국과도 전쟁 중이라 돈이 없었습니다.
당시 유럽은 이렇게 곳곳에서 죄다 전쟁을 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더더욱 종교에 매달렸고
그래서 면죄부가 더더욱 잘팔리는 악순환의 반복이었죠.
그래서 필립 4세는 플랑드르 지역과 전쟁하기 위해 돈을 어디서 구할까를 고민해보니...
보니파시오 8세라는 막장 교황이 민심을 다 잃어 가는 중이었던거예요.
원래같으면 하기 힘든 생각이지만 이때 필립 4세가 후추 안뿌린 썩은 고기 먹고 뇌가 맛이 갔는지
교황을 공격에서 돈을 뜯자!! 라는 생각을 합니다.
당시 교황청이 십자군 원정을 핑계로 키우던 사병군대인 성전기사단이 있었습니다.
교황이 타락했으니 당연히 성전기사단도 타락했는데
당시 성전기사단의 주요 업무는 만만한 귀족이나 농노들에게 삥뜯기를 시작으로
이슬람교도 땅에 사는 여자를 납치해서 다른 지역 귀족에게 팔거나
예쁘면 교황에게 바치는 역할을 하는 사실상 노예 무역을 하며 돈을 쓸어담았는데
필립 4세가 바로 이 부분을 명분으로 삼습니다.
성전기사단이 이교도 땅에서 노예무역을 하는데 그냥 순수하게 노예무역만 하겠냐!
분명 여자 노예와 이렇고 저렇고 입으로 꺼내기 민망한 짓을 했을것!!
이교도와 동침을 하다니! 이 역시 이교도 오랑케들이나 하는 짓이니 내가 혼내 주겠다!!!
라며 성전기사단을 공격해서 돈을 빼았습니다.
이야기 했듯이 성전기사단이 단순 노예무역만 하는게 아니라 교황의 은행역할 겸 재무관리도 했었기 때문에
교황의 재산도 삥뜯는겁니다.
보니파시오 8세가 너무 빡쳐서 필립 4세를 파문해버리는데
필립 4세는 하인리히 4세의 카노사의 굴욕을 알고 있었기에 반격 준비도 다했습니다.
필립 4세가 교황 악행 백서를 책으로 써서 전 유럽 귀족에게 다 돌려버립니다.
거기에 바로 교황이 교황직도 돈으로 샀으며 귀족집 유부녀들과 간통했고
그 유부녀를 갖기 위해 남편 귀족들을 십자군 전쟁으로 몰아넣어서 죽이고
동성애파티까지 한다 카더라!!
라고 썼던거죠.
그래서 보니파시오 8세의 악행이 역사적으로 너무 뚜렷하게 기록이 남았는데
학자들이 아무리 그래도 동성애는 아닐것이라고 하지만
면죄부와 유부녀 간통은 딱히 부정을 안했...
보통 같으면 파문 당한 왕이 뿌린 책따위 받는것만으로 신성모독이었겠지만
보니파시오 8세가 한짓거리들이 너무 많았는지 이때 전유럽의 왕이나 귀족들이 딱히 교황편을 들지도 않습니다.
필립 4세의 교황 악행 백서는 자기 변명이기도 했지만 현재 민심 파악용이었던거예요.
이것도 외우세요!
아무튼 민심 확인한 필립 4세는 여기에 용기를 얻어서 그대로 군대를 끌고 로마를 공격합니다.
이미 성전기사단이 없는 마당에 로마는 그냥 방어벽따위 없는 프리패스 똥땅이었던거죠.
필립4세...의 종자가 교황을 붙잡고는 귀싸대기 때리며 이 더러운 탕자야!! 라고 욕을 합니다.
그런데도 주변에서 아무도 말리지 못했고
이에 충격받은 교황이 한달만에 죽어버립니다.
필립 4세는 이렇게 얻은 돈으로 드디어 벨기에의 플랑드르 백국을 공격하는데....
그 지역 민병대에게 집니다...
교황청 때려잡은 필립 4세 정예군을 때려잡은 벨기에 민병대의 전투력은 대체....
솔직히 저는 필립 4세가 왜 프랑스에서 성군 취급 받는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그놈의 레볼루숑 정신이 교황을 두들겨 팼다는데 가산점을 너무 많이 부여한거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군사학적으로는 의미가 깊은데
막강한 필립 4세의 기병대를 막기 위해 플랑드르 민병대는 수로를 만들고 진흙탕을 잔뜩 만들었으며
이미 그때가 되면 기병기사단은 팔랑크스 방진으로 가속도 없는 기병대 따위 궁병에게는 거대한 표적지라는 대응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교황청마저 깨박살낸 필립 4세가 고작 민병대라는 생각에 방심을 한것까지 여러가지가 겹쳤기에 패배했는데
저는 밀덕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는 넘어가겠습니다.
물론 필립 4세가 너무 쪽팔렸는지 2년뒤에는 배를 끌고가서 공격해서
플랑드르 지역 정복은 못하고 배상금을 받는걸로 끝나긴 했는데...
진짜 왜 필립 4세가 정복군주인지...? 교황청을 정복해서 그런건가!
아무튼 교황이 죽었으니 다시 교황을 뽑아야겠죠?
기존에는 몇몇 유력가문이 돌려먹었는데 문제는 그 가문들... 보니파시오 8세가 죄다 학살해서 멸문되버렸어요.
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신앙심 깊고 인망있는 진정한 교황을 뽑아보자! 는 개뿔이
보니파시오 8세 말고 무난하고 착한 교황을 뽑자고 허수아비를 뽑는데
그마저도 필립 4세가 영향력을 발휘해서 프랑스인 교황이 뽑힙니다.
비로마인 교황이 없던건 아니었지만 이번 교황은 프랑스의 입김을 너무 강하게 받은 허수아비 교황이었다는게 문제가됩니다.
이번에 뽑힌 교황 클레멘스 5세는 이미 교황청 돌아가는것도 그렇고 분위기 파악을 합니다.
거기 끌려가면 바지사장은 기본이고 일단 프랑스 눈치보다 때가 되면 자길 죽이고 다른 교황뽑겠구나 생각해버립니다.
그래서 교황인데 로마로 안가는거예요.
뭐 이게 오바하거나 오해한건 아니고 거의 확실한겁니다.
그저 눈치빠르고 영민한건데 처세를 잘못한거죠. 이것도 외우세요.
로마로 가지 않는 수준이 아니고 아예 교황청을 프랑스로 옮기겠다고 말해버립니다.
이게 아비뇽의 유수의 시작입니다.
아비뇽의 유수는 한번이 아니예요.
클레멘스 교황 이후 7번이나 교황들이 아비뇽에서 교황을 합니다.
아까 클레멘스 교황이 눈치빠르고 영민하다고 했죠? 처세만 좀 못하지.
왜 똑똑한데 처세는 못하냐.
한마디로 서울대 가고 의대갈 정도로 머리좋고 공부잘하는데 일머리는 왜 이따구였나.
일단 교황청을 아비뇽에 정한 이유가 로마에서 떨어졌지만 기회를 봐서 로마로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위치.
그러면서 프랑스왕이있는 파리에서는 멀리 떨어져있었는데
당시 아비뇽 지역은 프랑스 땅이긴 한데 이 지역이 사보이공국이었어요.
프랑스 왕에게 충성은 하지만 신성로마제국과 더 가까워서 독일과 더 얽힌게 많은 지역.
한마디로 프랑스 간섭과 로마제국의 간섭을 받기 싫고
혹시 위기의 상황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의 도움은 받아 볼 수 있는 지역.
지 나름 머리를 썼죠? 간섭받지 않고 오직신앙!만 추구할 수 있겠다는 머리 굴린 흔적은 보이는데 근본이 잘못됐죠.
귀족들은 물론 카톨릭 신자들인 평민들 조차 로마로 가지 못하는 교황에 대한 인식은 교황 왜저래? 미쳤어?
이렇게 되는거예요.
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권리도 누릴 수 없다. 외우세요.
유수 라는 단어는 성경책에 있는 단어입니다.
바빌론의 유수라는 말에서 시작된거예요.
유는 유배할때 유고 수는 죄수할때 수입니다.
그러니까 대중들의 교황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금의 교황은 원래 자리로도 못돌아가는 유배온 죄수로 보인거예요.
정치적인 역학관계에만 신경쓰다보니 교황의 상징을 잊어버린 그런겁니다.
이때 이후로 7명의 교황이 로마도 안가고 이런데서 한 70년정도 있다보니까
점점 카톨릭에 대한 신뢰만 꺼져가는겁니다.
이미 권위를 잃어버린거예요.
그리고 이제 카톨릭 몰락의 절정.
대립교황의 시대입니다.
70년이 흐르면서 카톨릭은 이제 프랑스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갑니다.
이러다보니 다른 유럽국가들에서는 교황이 왜 프랑스에 있나?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요.
영국 스페인 기타등등 다 그랬지만 특히 신성로마제국이 강하게 불만을 품습니다.
마지막 7대에서 그레고리오 11세 교황이 로마로 가야겠다는 생각을합니다.
이 시기에는 프랑스 안에서도 파벌이 나뉘어요.
교황은 로마로 돌아가야한다와 프랑스에 남아야한다로 나뉩니다.
더 웃긴건 로마안에서도 파벌이 나뉘어요.
교황은 당연히 이탈리아 사람이어야 한다. 프랑스 교황은 오지마라.
뭔 개소리냐. 교황은 일단 로마에 와야한다.로 나뉘어요.
진짜 개판이죠?
어쨌든 그레고리오 교황은 로마로 가기로 결정을 하는데
모든 유럽에서 파벌에 따라 교황이 가는길에서 전쟁을 합니다.
교황이 로마로 가는걸 막으려는 쪽에서 보내는 용병을 막으려고 또 용병을 구한다를 이유로 계속 싸워요.
교황이 정말 힘들게 피를뿌리면서 기어이 로마에 도착하는데 도착하고 얼마안되서 암살당합니다.
진짜 인생무상...
클레멘스 교황도 이럴줄알고 로마 안가고 아비뇽에 남은거였거든요.
어쨌든 교황이 죽고서 이탈리아 출신의 교황을 다시 뽑습니다.
이걸 보고 프랑스에서 교황의 시체라도 돌려줘라! 하며 프랑스가 후송대를 보냈는데 로마는 그것도 반대합니다.
프랑스가 빡쳐서 로마에 반기를 들고 아비뇽에 다시 한번 교황을 세웁니다.
이렇게 교황이 2명이 됩니다.
이것이 대립교황의 시대입니다.
이제 모든 유럽에서 각자 자기들이 인정하는 교황이 나뉘기 시작해요.
그리고 결국은 교황끼리 전쟁을 합니다.
교황 대신에 왕들이나 대귀족이 싸우는 대리전이 아니고 진짜 교황끼리 직접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북부에서 전쟁을 합니다.
이때 로마쪽 교황이 전투할때 부상을 입고 그것때문에 죽어요.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 지경이 되니까 전쟁을 하는 교황들도 이게 맞나? 싶어서 교황청을 하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해요.
초대 대립교황들은 서로를 증오해서 전쟁을 했지만
나중에는 전쟁을 관성적으로 하다보니까 교황을 합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거예요.
진짜 소림사도 이렇게는 안하겠다 싶긴한데...
그러던 와중에 로마쪽 교황이 이노센티우스였는데 이 교황의 부하중 한명이
교황을 1명을 뽑아야 한다면 지금 교황 동시에 둘 다 물러나고 새로움 교황 1명만 뽑아야한다고 말해요.
부하가 이렇게 말하니까 교황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단일화는 해야겠지만 당연히 내가 혼자하는 그림을 그리는건데 부하가 눈치없게...
그래서 파토가 나서 그냥 대주교들끼리 모여서 우리가 차라리 뽑겠다.
우리가 뽑은 한명만 교황으로 하자하고 파벌에 속하지 않은 교황을 뽑아요..
그게 알렉산데르 교황입니다.
웃긴건 이렇게 뽑았는데 아비뇽이나 로마쪽 교황이 전부 받아주지 않아요.
그래서 단일화 하려는 시도는 교황3명으로 결과가 나옵니다.
이게 바로 킹덤컴 게임의 배경이예요.
교황이 3명인 시대... 바로 이때입니다.
보헤미안 왕국. 지금의 체코땅에 얀후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아버지.
대부분 종교개혁의 시작을 칼뱅이나 루터로 알겠지만 칼뱅은 자존심 강한 프랑스 사람이라 아니긴 하지만
루터는 얀후스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이예요.
한국에서 루터는 몰라도 얀후스가 유명하지 않은건
한국 개신교가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미국 개신교가 칼뱅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자세하게 들어가면 복잡하지만
루터파의 시작인 얀후스쪽 개신교는 기본적으로 국가권력을 따르라는 순수 정통 게르만족 같은 느낌이 강하다면
칼뱅파는 부당한 권력에는 저항해라! 라는 프랑스다운 교리이고 이게 또 미국 입맛에 딱 맞겠죠!?
문제는... 한국인들 성향은 루터파라고 해야할지 국가권력에 순응하기를 좋아하는데...
정확하게는 니들은 국가에 다 순응하고 질서를 지키고 튀지마라! 나는 내 멋대로 살겠지만...
이긴 한데 아무튼 한국인 성향과 칼뱅교리는 조금 많이 안맞는데 그러다보니 한국 개신교가 자기 모순에 빠진게 아닌가 하는...
음모론 축에도 못끼는 루딩 개인 의견은 여기까지!
얀후스는 신학을 강의하는 교수입니다.
정확하게는 사제는 아니고 교수입니다.
특히 특이한건 이 사람은 귀족출신이 아니고 평민출신입니다.
이 사람의 성이 후스입니다.
후스는 게르만어고 영어로 구스입니다. 거위예요.
이름만 봐도 귀족스럽지는 않죠?
평민 출신인데 겁나 똑똑했나봅니다. 당시에 사제가 아닌데도 신학강의를 하는 교수님이었으니.
어쨌든 얀후스는 대립교황같은 꼬라지를 보고는 카톨릭은 타락했다고 생각하며
기독교의 순수성을 연구하다가 내린 결론.
오직 성경!!! only bible!!!
이런게 나온 이유가 기독교나 성경의 말씀. 예수님의 의지.
아예 인간의 정치적 입장 이런걸 싹빼야한다.
교황을 볼게 아니라 성경만 봐야한다. 애초에 왜 교황청이 지들 멋대로 성인 지정하고 자빠졌냐.
외경이니 뭐니 하는 라이트 노벨은 뗼감으로나 써라!
라는식으로 꽤 강경하게 나갑니다.
이런 강의를 하다보니 대립교황 시대에 지친 레알 신상추구하는 기독교인들 중에 추종자들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벤체슬라스가 등극합니다.
황제로 등극할때 대관식을 로마에서 했었어요.
근데 벤체슬라스는 대관식에도 안갔어요.
나름 명분이 있었는데 어떤 교황한테 가서 대관식을 가야하냐?를 핑계댔습니다.
당연히 너무 핑계인게 대관식 안가고 주색잡기만 빠졌습니다.
게다가 어느 교황을 지지한다 라는것도 없었어요.
물론 귀족들 사이에 파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황제가 방향을 잡아줘야하는데
대관식을 안가고 하는짓이 정치적인 의논이 아니라 주색잡기를 하는거예요.
참고로 당시 벤체슬라스가 핑계를 대기를
요즘 민중들에게 인기 있는 얀후스가 하는말에 따르면 오직성경. 성경말씀을 따라야 한다더라.
대중들도 그러하니 나도 하나의 교황을 지지하기보다 좋은게 좋은거. 오직 성경! 말씀이나 잘 따르자.
뭐 이런 소리를 해요. 이때까지만 해도 얀후스는 이교도 취급은 아니었고
오히려 인기있고 좋은말 하는 조금 특이한 인간?? 수준이었습니다.
왜 요즘도 있잖아요? 말 재미있게 하고 민중들이 유행처럼 따르는 종교지도자들.
하지만 얀후스는 그런 인기있는 종교지도자와 다르게 특이했던건 얀후스는 사제가 아니었는데 사람들에게 신학을 알려준다는점.
그리고 이게 핵심인데. 얀후스는 성경책을 체코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대중들에게 성경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였죠.
이 2가지가 핵심이고 그외 자잘한 특이한점은
부활절에 사제들이 만든 빵과 포도주를 먹으면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의식같은거 지금도 교회에서 부활절때 하죠?
아무튼 이 거룩한 행사를 하는데 중세시대때는 빵과 포도주는 사제만 만들수 있었고
특히 사제를 제외한 사람이라면 빵만 먹고 포도주는 사제만 마셔야 한다던가
아무튼 이런 복잡한 절차가 있었는데
얀후스는 민중들과 함께 같이 빵과 포도주를 만들고 같이 먹었어요.
뭐 이런식으로 특이한 것들이 있다보니 대중적으로 인기가 폭발한거였어요.
한마디로 특이하다고 했지만 이게 교황청에서 볼때는 이단적인 행위였던거예요.
다만 이때 얀후스를 이단으로 지정하지 않았던건
그런 사소한 문제보다는 교황 3명인것 부터 해결해야해서 일단 놔둔거예요.
그런데 벤체슬라스는 얀후스가 특이하다가 아니라 오히려 친화적인 발언을 하고
심지어 대관식 참여 안한 핑계로 대기까지 했잖아요.
교황청이 딥빡했고 당장에라도 마녀사냥... 이 아니라 마놈사냥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튼 교황 3명인걸 해결하는게 지상과제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벤체슬라스의 이복동생이었던 지기스문트. 헝가리왕이 위기감을 느껴요.
이때는 신성로마제국 체코 헝가리가 전부 게르만족의 국가였고
서로 다 게르만어를 쓰고 있었는데
헝가리만 조금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
특별한 점은 뒤에 이야기 하고 어쨌든 고구려 백제 신라 느낌으로
다 같은 민족에 같은 언어를 쓰지만 통치하는 왕은 각자 있고 그러면서 왕가는 똑같은.
어쨌든 지기스문트는 형이 맛탱이 갔는데 더욱이 교황에게 트집잡힐 만한 발언까지 했으니
이러다가 정치적 혼란으로 게르만 국가가 귀족 파벌에 의해 내란이 발생할 수 있겠다 생각을 해요.
참고로 이때 신성로마제국의 왕가는 룩셈부르크 왕가입니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이 다음입니다.
그럼 정리를 하자면 신성로마제국은 지금의 독일과 오스트리아예요.
여기에 보헤미아왕국은 현재의 체코지역 입니다. 헝가리는 그냥 헝가리입니다.
벤체슬라스는 보헤미아 왕국의 왕이며 신성로마제국 황제입니다.
지기스문트은 헝가리 왕이예요.
그럼 위에 말한 헝가리가 특별한 상황이었다는걸 설명하자면
이때가 1300년대 후반인데 이 시기로부터 100년전에 세계사 대격변. 데우스엑스마키나.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이 유럽을 침공한 이후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 주치가 유럽까지 공격했다가 징기스칸 사망으로 물러난일이 있었죠?
몽골군이 헝가리까지 공격했다가 물러난거예요.
이때 뭐 키예프공국 망하고 타타르의 멍에.는 물론
중동이라고 할지 이슬람문화권이라고 할지. 아예 한 지역이자 문화권 전체가 초토화 당해버리고
이 부분 자세한건 징기스칸4 게임을 해보시면 다 알수 있습니다.(20세기 코에이는 신이었...)
어쨌든 헝가리는 원래 순수 게르만 국가였지만
몽골침입으로 이슬람 왕국들이 죄다 망하면서 몽골을 피해 도망쳐온 이슬람애들이
헝가리로 엄청 많이 몰려와요. 어떻게 보면 난민이죠.
조금 왔다가 아니라 정말 많이 옵니다.
애초에 헝가리나 폴란드도 몽고의 공격을 받았다가 망할뻔 했었는데 징기스칸이 죽어서 살아남았구요.
참고로 이때 헝가리는 지금의 크로아티아 루마니아지역까지가 헝가리입니다.
그러니까 지기스문트가 왕일때 헝가리 땅도 넓었지만
얼마전까지는 순수 게르만 국가 가끔 슬라브 섞여있음. 이정도였다면
지기스문트 시절에 이미 다민족 국가가 되요.
게르만 + 몽골인 + 중동쪽 이슬람인
게르만이 비율만 보면 제일 많기는 했지만
슬라브도 있고 투르크계열 또는 중동애들을 다합치면 게르만족과 비슷하거나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당시에 제대로 된 인구조사가 없었으니 정확한건 알 수 없었겠지만요.
이런 배경들이 뭉치고 뭉쳐서 히틀러를 뽑은 나치를 지지하는 독일인들이 순수 게르만이니 레벤스라움을 그렇게 부르짖었던겁니다.
단순히 인종차별에 미친게 아니라 이 시기의 역사부터가 사실상 현재 독일의 문화까지도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죠.
유럽에서도 프랑스보다도 더욱 많이 외국인 노동자나 난민을 많이 받는 배경이 다 있는겁니다.
아무튼 이 시기 이러다보니 이때는 이미 헝가리 안에서 서로 다른 언어에 다른 문화권에 있었어요.
딱하나. 카톨릭 국가라는건 탄탄합니다.
아마 한국인들에게 유럽역사가 어렵고 복잡한게 이런 부분일거예요.
저도 처음에 유럽역사 배울때 왕조가 어쩌구에 종교가 어쩌구에 다민족 어쩌구 그리고 왜 왕을 외국에서 수입해오나등등
생소한 문화권을 이해하는데 어려웠는데 이건 단순히 한국인이 익숙하지 않아서도 있지만
사실 이런건 유럽애들도 어려워합니다.
동시에 지금 미국이 가진 가장 큰 문제가 이런것과 유사하죠.
대충 음모론 3부에서 무슨 이야기가 다 폭발해서 루딩식으로 비빔짬뽕밥이 될지 예상 되신다면
당신은 꼰미 레벨 5!!
그리고 3부에서 이야기 자세하게 하겠지만 저는 한국이 고금리시대를 넘어 다음 세계대전에서 살아남는걸 넘어서서
최강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는게 아니라 정면 돌파해야할 문제가
다민족 다문화라고 확신합니다.
지금처럼 순수 비난과 배척으로 외국문화 나가라 외노자 꺼져라 같은 3류 찌질이 같은 생각만 하면서 살면
혼자만 도태되는게 아니라 국가 자체가 그냥 중국에게 흡수당하고 300년쯤 지나면 한민족 자체가 역사서에 남아나 있을까 싶어요.
K 문화 유행이니 뭐니는 그 다음문제라고 봅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한국이라는 국가에 애국심을 가진 다민족 다문화 타민족 언어 사용등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금융시대의 최강국가는 가까워지다 못해 필수요소라는걸 확신합니다.
그래서 1부에서 미리 배경 설명을 조금 자세하게 하게되네요.
찰스브로슨 이라는 배우가 있어요.

사진처럼 생겼습니다. 유럽 다민족 국가를 상징하는 외모입니다.
본인 스스로가 내 얼굴은 다이나마이트에 폭파된 광산같이 생겼다고 할정도예요.
이 사람은 리투아니아 태생의 미국인인데
리투아니아도 당시 몽골침입에 중동 중앙아시아 혹은 카자흐스탄이나 우크라이나에서 난민이 엄청 몰려와서 피가 많이 섞였거든요.
심지어 아예 몽골피를 이어받은 사람들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 이런 동양적 외모의 백인이 존재하는거예요.
당시 헝가리가 이런 외모릐 사람들이 많았고 지금 헝가리도 그렇다보니 분명 독일 역사를 공유하고 게르만 민족성과 문화를 가졌는데
외모는 독일인 같이 안생겼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는거죠.
어쨌든 이 시절의 헝가리는 유럽에서는 보기드문 다민족국가였다는거!
참고로 중국도 이런거 많습니다.
당나라 시절부터 그 이후 5대 10국 시절까지 수많은 이민족들이 중국 한족과는 확실한 선을 그으면서도
그 문화권에 익숙해져버린.
만주족은 딱봐도 동아시아 외모지만
당나라 자체가 선비족이 세웠다고 하는데 선비족도 동아시아의 한 민족 개념이라면
백인의 외모에 이슬람 문화라같은게 이미 당나라때부터 자연스럽게 스며들어들고
한족과 혼혈을 하며 소그드인 사타인 기타등등 오만 다민족이 중국에 정착해 살았었잖아요?
대표적으로 한국인 배우중 한명도 한국의 즐라탄이라는 소리를 듣죠?
거기서 조금만 더 백인 외모에 가까워지면 그게 소그드인입니다...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아무튼 어쨌든!! 이때 헝가리 왕 지기스문트는 그 이민족들 쌈박질 날테니
기독교만 믿으면 모두 헝가리인으로 받아주겠다를 제대로 실천해서 국내 갈등을 잡으려고 했어요.
잡으려고 했다는건 못잡았다는 소리고 지기스문트때 그만큼 국내갈등이 말도 못했다는겁니다.
평민들은 딱히 싸우는 일이 없이 지기스문트 충성도가 높았는데
귀족들이 문제였어요.
일단 크로아티아 지역이 있고 그 옆의 세르비아와 보스니아가 있었는데
이 둘이 카톨릭이 아닙니다. 보스니아는 카톨릭이 아니다를 넘어서 토속종교 뭔가를 믿었어요.
그래서 맨날 전쟁을 하는데 지기스문트는 제대로 신경을 못써줬어요.
애초에 뼈속까지 기독교인인 지기스문트가 기껏 자비있게 타종교 타문화를 이해한다고 해봐야
21세기 현대인들 조차 타종교 타문화를 배척하는게 말도 못하는데 그게 됐을리가...
그래서 보스니아는 바다건너 이탈리아 땅의 나폴리왕에게 통치해달라고 하고 싶어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나폴리왕은 이미 지기스문트와 짜웅했기 때문에 당연히 보스니아를 돕지 않았고
지기스문트가 자꾸 기독교 믿으라며 침략하려는게 보이자
적의 적은 친구! 보스니아는 오스만제국과 손잡고 지기스문트와 싸웁니다.
그런데 지기스문트가 이 전쟁에서 졌어요.
물론 보스니아는 오스만제국에게 정복당하는 고종엔딩으로 마무리 되면서 피똥싸는 지배역사가 시작됩니다.
그나마 다행이랄까 평민들은 지기스문트에게 나름 친근감 느끼고 신뢰하고 있어서 어느정도 국내를 안정시키긴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오스만 제국이 공격하려고 하니까 전쟁자금이 필요하고
얀후스때문에 교황청에게 찍힐것 같은 상황.
복잡하죠?
이렇게 복잡해지고 뭐가 뭔지 알기 힘든 권력 역학구조가 발생한건 결국
절대 권력인 교황청이 유럽왕들을 십자군 원정으로 힘을 다 빼놨으니
왕들이 결국은 교황에게 숙이고 들어가야하지만
정작 그 교황청이 타락하고 몰락한데다 사람들의 신망을 잃으니
기독교를 안믿겠다는 유럽국가들이 하나 둘 생겨나는 중에
가뜩이나 기독교는 이슬람과 성전을 치루는데
저쪽 동방의 절대재앙 몽골군이 이슬람 문화권을 완전 박살냈지만
정작 그 몽골이 이슬람을 받아들여서 새로운 민족구성의 이슬람 국가가 되면서
또 다른 기독교 문명권을 위협하고 있으니
기존의 기독교 교리나 법률체계나 기술력이나 기타등등 이해력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없는거예요.
이 설명마저 조금 복잡할 수 있는데... 음모론 3부까지 가면서 최대한 풀어서 써보겠습니다!
원래 그래서 음모론은 방송으로 해야 그나마...
어쨌든 빠르게 글을 마무리 하자면
결국 지기스문트가 결단을 내립니다.
얀후스를 정리하고 벤체슬라스도 끌어내려야 겠다.
게르만 왕국을 안정시켜야 한다!!
그래서 보헤미아왕국에 있는 벤체슬라스를 공격해서 끌어내립니다.
순간적으로나마 신성로마제국 황제 보헤미아왕 헝가리왕을 지기스문트가 다 통합해버립니다.
독일 역사상 사실상 최초의 통일과 같은겁니다.
한국으로 치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시대에 신라가 통일을 한겁니다.
그런데 그 신라가 고구려땅은 당나라에게 뺏긴게 아니라 그 삼국 영토를 통으로 먹은 수준인겁니다.
마치 한국에서 환빠들이 그렇게 바라던 여기도 저기도 한민족 국가라고 우기는...
왜 이런소리하냐!
이게 독일역사에서 엄청 중요한 사건이예요.
한순간이나마 게르만족의 거대 제국이 탄생한건데.
이걸 기준으로 나중에 30년전쟁 이후 다시 독일을 재통일하는 명분이자 예송논쟁같은 걸 하는데
그게 소독일주의 대독일주의입니다.
프로이센이 대독일주의. 게르만족의 제국을 만들때 대독일주의를 주장했는데
이 기준이 지기스문트 왕이 정복한 땅 전체를 말해요.
그러면서 독일 통일전쟁을 하기 시작했고 프리드리히때 완성이 된거고.
더 중요한건 이게 발전해서 히틀러때가 되면 레벤스라움이라는 해괴한 사상으로 발전해서
히틀러가 선동질한 순수 아리아인 어쩌구 저쩌구하는걸로 발전하거든요.
히틀러 사상의 시작이 지기스문트!!??
왜 환빠 어쩌고 한지 아시겠죠.
사실 환빠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전세계 여기저기 보면 이런식으로 국뽕 치사량이 넘쳐 흐르는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보통은 이런 사람들은 일반 사회에서도 배척받다 못해 ㅂㅅ취급 받기 마련인데
이 ㅂㅅ들이 어떤 일련의 사건과 과정을 지나 운때가 맞으면 또 국론의 한 중심이 되기도 하거든요...?
여기서 트럼프, 마가 같은것 부터 떠올리면 그건 루딩식 음모론이 아니라
정론 같은겁니다!? 루딩식 음모론은 항상 2차원쯤 더 나가는게 전통!
조금 과장은 있지만 정말로 대독일주의 기준이 지기스문트 시절의 영토입니다.
한국역사에서 딱 맞는건 아니지만 비유적으로 볼때 통일신라라고 볼 수 있어요.
통일 신라 이전에도 한민족 의식은 있었지만
통일 이후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확고히 자리잡아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우리가 지금도 중국과 다른민족 다른역사 주체의식이 생겨서
지금 설마 우리가 중국을 사대했다는걸로 중국의 소수민족이라고 생각하는 미친인간
이 아주 가끔 돌연변이 처럼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놈은 제가 인천앞바다에 던지기로 하고.
어쨌든 독일이 한순간이나마 1명의 왕을 섬기는 상황이 됐지만 여전히 국내 정세가 불안했는데
특히 결국 돌고 돌아 얀후스입니다.
교황이 지금은 3명이나 있으니까 참견 안하지 1명으로 정리되는 순간
얀후스때문에 독일이 이단국가로 찍히고 지기스문트가 파문당할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지기스문트는 콘스탄츠 공의회를 열어요.
이게 대단한게 교황이 아니라 왕이 공의회 선언을 한거예요.
이러면 유럽의 저명한 추기경 대주교들이 다 모여서 엄청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건데
지기스문트는 교황을 1명으로 정리하자고 열었는데 여기에 교황청이 응했다는거예요.
그만큼 지기스문트의 권위가 대단했었고 이 공의회에 얀후스도 불러요.
지기스문트는 얀후스에게 공의회로 오는데 내가 이름걸고 너 보호해줄게 와라! 이럽니다.
함정이 아니라 진짜 지기스문트는 보호해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팔츠선제후가... 지기스문트에게 과잉충성을 하는바람에
공의회로 오는 얀후스를 납치해서 죽입니다.
이것때문에 지기스문트 대분노 해버려요.
당연히 다른 왕들은 지기스문트 저새끼 저럴줄 알았다 하는데
저는 과잉충성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지기스문트가 자기 이름 걸고 보호해준다고 공표했고 보헤미아의 얀후스 추종자들도 다 알고 있었어요.
이 시기의 지기스문트는 국내적 혼란을 어떻게든 막고 싶어했고
이미 대놓고 그러겠다고 공표했으니 이걸 지켰어야 했는데
여기서 얀후스 죽이면 지기스문트가 기껏 통일한 신성로마제국이 갈라지는건 확정입니다.
특히나 보스니아 하나 먹어보겠다고 쌩지랄하다가 오스만제국에게 털린거 생각하면
얀후스 하나로 도박할 머저리가 아닐겁니다.
팔츠선제후가 순간적으로 일본군에 빙의를 한건지 과잉충성을 해버리고...
어쨌든 공의회 결과 기존 3명 교황 전부 은퇴하고 1명을 새로뽑는걸로 로마교황으로 통일해냅니다.
문제는 얀후스가 죽은것 때문에 보헤미아가 반란을 일으켜요.
이게 얀후스 전쟁입니다.
얀후스 전쟁 이후 30년 전쟁까지는 또 방송에서 역사이야기 했지만
이번 음모론에 필요한건 대충 여기까지만 해도 될 것 같네요.
더 하고 싶어도 제가 글쓰고도 지금 맞게 쓴건가? 검토하기에는 글이 너무 길고
어디 학교 과제 같은거 하는게 아니라 검토를 한다는건 가뜩이나 요즘 블로그 글도 잘 못쓸정도로 시간 안나는데
이 글도 지금 3일째 쓰고 마무리 하는겁니다.
다음 2부 글은 최대한 일주일 안에 써서 올리고 싶어요.
개인적으로 2부가 정말 중요하고
3부 음모론 최종결정전은... 차라리 안써버리면 온갖 해석이 가능해지는 미완의 열린결말이 될 수 있을지도요!?
어쨌든 1부는 여기까지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원래도 복잡한 유럽 역사에서도 특히 더 복잡한 독일 역사 신성로마제국 파트의 일부를
대립교황 시대와 엮어서 쓰다보니 참으로 유럽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사람이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특히 요즘 20대들만 해도 삼국지 자체를 안읽는데 그 이유가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잖아요?
사실 여기까지 이야기 한건 삼국지로 치면 십상시가 나오게 되는 배경까지만 설명한 수준밖에 안되긴 합니다.
본격적인 삼국지 같은 내용은 30년전쟁에서 다 해버리니...
삼국지에 비하면 최대한 간추리긴 했는데 너무 간추린데다
제가 진짜 이번 글은 밀덕이 아닌데 어째서인지 밀덕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계셔서
전쟁 했다는 부분을 최대한 그냥 한줄로 넘어가다보니
오히려 도대체 누가? 어느국가와? 전쟁 이라는게 더 헷갈리면 어쩌지? 싶기도 하지만
그런데 이게 또 유럽 역사가 원래 이래서 정작 유럽인들이 자기나라 역사를 모르는애들 태반이고
사실상 전공자들만 자기나라 역사 안다고 할 정도잖아요.
그에 비하면 괜히 한국역사 너무 단순하고 한줄기 수준이라며 공부할게 없으니
온갖 유물이나 정부관청 이름이나 외우고 연도로 부족하니 월까지 외운다 같은 소리가 나오는데
물론 저도 한국사 본격적으로 파고들면 꽤 빡빡하다는거 압니다.
오히려 저는 한국 역사 배울때 왜 만주족이나 여진족등 주변 국가 역사를 자세하게 안배우는지 의문일 지경이예요.
그거랑 엮어서 봐야 확실하게 이해가 되는건데.
너무 한국에만 초점을 맞춰서 수업을 진행하는거 아닌가?
그런데 또 그렇게 파고들면 유럽역사는 교수들도 자기 파트 아니면 모르는게 투성이일정도로 복잡하다보니...
저도 전문가이기는 커녕 대다수가 초중고딩 시절 게임을 하면서 애정으로 알아본게 전부일뿐.
본격적으로 사학과처럼은 커녕 그런 역덕들 수준으로도 파보지 못했고
20살 이후는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빠서 일만하는 노비인생이었으니
대다수 지식은 10대 시절에 알았던 기억을 다시 재정립했을뿐입니다.
그럼 2부 글도 기대하실분이 많지 않아도 쓸거니까 그냥 기대하세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