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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의 큰 주기와 흐름 음모론. 1 유럽 역사편.

2026. 10. 1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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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방송에서 잡담겸 역사이야기겸 했던 내용이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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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컴 이라는 게임 발매 기념으로 그 게임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의 프리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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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사의 굴욕부터 카톨릭의 몰락으로 얀후스가 등장하는 역사까지를 간략하게 이야기 한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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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제가 동아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중 하나인 삼국지가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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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사실상 세계대전의 프리퀄같은 전쟁인 30년전쟁이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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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은 같은 선상처럼 보면서 정말 좋아하는 시기라고 했던 적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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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킹덤컴이라는 게임에 맞춰서만 역사이야기를 했는데 이번에는 그걸 확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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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가치관 중 하나를 만드는 음모론을 한번 소개해볼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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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때 했던 역사이야기를 글로도 다시 써볼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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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하는 유튜브 라이브들을 편집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는 글쓰는것도 좋아하니까 정리겸 간략하게 다시 글로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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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으로는 3편에 걸쳐서 이번 음모론을 완성하지 않을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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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어떤식으로 진행할지에 대해 간략하게 써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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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은 유럽 역사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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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유럽역사를 좋아하고 그나마 제일 대중적이라고 생각해서 유럽역사를 예시로 드는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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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인간세상 다 사람사는곳이고 돌고 돌아 똑같은거 반복하는 잘못을 반복하는건 여전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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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에서도 제가 또 엄청 좋아하는 파트인 청말민초를 설명해도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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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의 게임편 흐름에 맞추기위해 유럽역사편을 시작으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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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만 간간히 말했는데 제가 역사를 좋아하며 이것저것 책을 다 뒤져보게 된 계기가 게임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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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첫 계기가 된 대항해시대 라는 게임은 앞서 소개했으니 이번에는 다른 게임을 예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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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제가 사춘기 시절 처음으로 그 게임을 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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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인생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게임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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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은 유럽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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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은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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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은 그래서 앞으로 우리시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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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마무리 되는 음모론의 첫번째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제가 유럽역사에서도 엄청 좋아하는 30년전쟁을 설명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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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앞서 도대체 교황청은 왜 몰락하고 구교와 신교를 명분으로 유럽 전체가 전쟁을 하게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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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삼국지에서 왜 진시황이 통일한 이후 하나의 중국이었는데 삼국으로 나뉘게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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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적이라는 형태의 민중반란이 시작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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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1000년 경의 카노사굴욕부터 시작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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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서 했던 이야기는 정말 온갖 잡담을 다 섞으면서 투자에 도움되는 관점에서 이야기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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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음모론에 초점을 맞춰서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보도록하겠습니다.

107년 신성로마 제국 황제인 하인리히 4세는 자국의 성직자들을 자기 입맛대로 입명했다는 이유로

​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던 것에 대한 대가로 직접 로마 교황청으로 가서 눈덮인 카노사 성문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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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자 옷을 입고 맨발로 서서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구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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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교황인 고레고리오 7세가 용서를 받아주며 파문을 취소했던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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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문이 왜 엄청난 위협이었냐면 당시 유럽에서 교황청에서 파문을 당하면 이교도가 되는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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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주변 왕들부터 자국 대귀족들에게 가장 큰 전쟁공격명분이 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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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굴에는 장사없듯이 파문은 곧 왕족가문의 멸망을 뜻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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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경에는 로마 멸망 이후로 1000년 정도까지 유럽의 절대권력자는 교황이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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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경제발전과 기술력의 발전등등으로 각 유럽의 왕들은 점점 세력이 키우고 힘이 강해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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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슬쩍 혹은 대놓고 교황청의 권력을 살살 건드는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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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랑스 왕들은 대놓고 성직자 자리를 사고팔지 않나 수도원에 들어간 귀족여자들과 간통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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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신성모독을 밥먹듯이 했고

​

섬나라 해적놈들인 잉글랜드 왕은 아예 교황청에 충성하길 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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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은 이미 이슬람 세력권이라 교황의 영향력 자체가 씨알도 안먹히는 이교도의 저주받은땅 취급이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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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신성로마 제국 황제에게만 이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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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데 그 중에서 중앙집권의 왕권이 상대적으로 제일 약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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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들은 알프스산맥을 거치지 않고 로마로 이동이 가능했기에...

​

는 줄여서 그냥 제일 만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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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로마 멸망 이후 1000년까지 약 600년간 교황청이 충분히 해먹을만큼 해먹은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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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권력에 위기를 느낀 교황청은 기강을 한번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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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사의 굴욕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유럽에서는 내가 최고권력자다! 라는걸 다시 입증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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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바로 유럽역사에서 하나의 큰 빅뱅의 시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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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사의 굴욕은 밑에서 올라오는 신흥세력들의 성장을 두려워한 최고권력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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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만만한놈 기강을 잡아서 본보기를 보여주려한 사건이라고 외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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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을 계기로 유럽의 크고작은 왕부터 대귀족들이 점점 교황청에 대한 신뢰가 의심과 경계로 돌아서길 시작합니다.

​

교황청도 이런 흐름을 읽었는지 하나의 해결책을 내놓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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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십자군 원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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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노사의 굴욕을 통해서 당장은 유럽왕들도 교황청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이미 불순한 움직임들이 보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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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그런 근본적인 이유가 유럽 왕들이 경제적으로 엄청나게 성장했으며 이제 유럽이라는땅은 너무 좁았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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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시장이 필요했었고 이 힘을 발산할 곳이 필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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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있다가는 교황청이 잡아먹히게 생겼으니 이 에너지를 다른곳으로 뿜어내야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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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바로 예루살렘 성지탈환을 명분으로 하는 이슬람 세력권에 대한 도전이었어요.

​

교황청의 입장에서는 왕들의 힘을 뺄 필요가 있었으니 전쟁을 일으켜야할 이유가 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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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이미 빤히 보이는 유럽은 전부 교황세력땅이었으니 더 많은 신자 확보를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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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도들에게 기독교를 배달해야만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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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왕들도 그들의 가문 내지는 자신의 충신들에게 줄 보답이 유럽만으로는 부족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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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땅. 경제적인 시장이 필요했기에 전쟁을 해야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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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필요한 이유는 폭발적인 경제성장. 이것도 외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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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이해가 일치해서 유럽은 이슬람을 상대로 십자군 원정이라는 전쟁을 200여년간 진행합니다.

​

교황청의 목표는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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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원정으로 인해 유럽왕들은 점점 분열하고 힘이 약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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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원정으로 기존왕들이 다른 가문에 의해 멸망해서 사라지는 일도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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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잉글랜는 잉글랜드 역사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윌리엄이 세운 노르만 왕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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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귀족 출신인 플랜태저넷 왕조로 바뀌는데 사자심왕 리차드 1세가 바로 이 가문 출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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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안끝나고 이후 백년전쟁등으로 또 한번 왕조가 몰락하고 잉글랜드 자체가 박살나면서 튜더가문으로 넘어가기까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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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도 마찬가지로 기존의 카페왕조에서 발루아 왕조로 교체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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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은 제국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정도로 분열되서 아예 게르만 왕조가 사실상 끝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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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기반의 룩셈부르크 가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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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부근의 영주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촌장 수준이었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갈라먹는 지경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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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고 교황청의 왕들 견제는 대성공을 거두고 영원히 절대권력을 유지할 것.... 같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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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도 고스돕쳐서 그정도 힘과 경제력을 얻어낸게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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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프랑스 왕조도 교체가 되었지만 교체되기 직전 카페왕조 마지막 불꽃인 필립 4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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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에 필살기를 날리고 교황청도 같이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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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도 왕도 서로 견제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이후 겉으로는 손잡고 십자군 원정을 시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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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왕족도 교황청도 박살나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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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현재 미국이 중국을 공격하는척하지만 동맹국들 잡아먹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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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3부에서 알아보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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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바로 유럽왕들도 무너지지만 교황청이 무너지는 카페왕조 마지막 불꽃 필립4세를 조금 알아봐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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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마 킹덤컴 배경 역사이야기 시작을 필립4세로 시작했을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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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 6차 교육과정 배웠던 우리들은 교과서에서 카노사의 굴욕과 아비뇽의 유수를 같이 붙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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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불에 콩 볶아먹듯이 빠르게 배우고 넘어갔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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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학교는 자세하게 배웠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수업시간에 자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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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시험을 보기위해서 대충 외우고 지나가는 것이 다였던것 같았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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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저는 이미 유럽역사 빠순이였기 때문에 관련 서적을 먼나라 이웃나라부터 이야기XX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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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 역사책과 소설을 수업 내팽개치고 읽어대던 시기였고 이것 또한 너무 재미있게 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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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20세기를 살아가는 모범적인 학생이라면 학교의 가르침에만 만족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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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공부 목표 설정과 수업시간마저 쌩까는 추진력을 가져야 하는것이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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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원정등으로 유럽의 왕족들이 점차 몰락을 하자 교황청은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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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죄부를 대놓고 팔아대고 성직자 자리도 사고 팔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게 바로 이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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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세르크라는 만화에서 나오는 교회의 온갖 악행의 시작의 대부분이 여기서 시작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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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왕이나 귀족만이 아니고 민간인들조차 슬슬 교황청에 학을떼기 시작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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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교황청의 대안도 없었고 이슬람세력과 전쟁을 하는 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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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다 하소연 할 곳도 없었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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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내부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더더욱 가열차게 타락하며 자기 욕심 채우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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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만한게 없습니다. 이것도 외우세요.

​

아무튼 교황청이 밑도 끝도 없이 타락해가는 1300년대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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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교황 자리는 사실상 로마의 유력가문 몇개가 돌려먹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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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균열이 깨지기 시작하는게 보니파시오 8세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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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파시오 8세는 어느교황들처럼 자신을 교황으로 뽑아주면 너희 가문의 이권 보장은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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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원정 꿀단지에 빨대 몇개 더 꽂아주겠다등등으로 현혹하여

​

교황이 되는데 성공합니다.

​

그런데 보니파시오 8세는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교황이 되자마자 약속을 지키는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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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 가문을 죄다 숙청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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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존 교황들은 안그랬는지가 더 궁금할지경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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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약속을 안지키는것이 최고권력자의 미덕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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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교황들도 막장이었지만 보니파시오 8세는 한술 더뜹니다.

기존 교황들이 단순하게 면죄부를 팔았다면 보니파시오 8세는 그 이름도 악명높은 이중 삼중과금 면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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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제부를 사기위한 입장권을 추첨하기 위한 이벤트 참여권까지 팔아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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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상술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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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현기차 뺨 후려치는 옵션질 면죄부로 로마 30일 거주권. 지옥불 온도 낮춰주는 옵션. 아예 고통 못느끼는 옵션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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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하게 나눠서 팔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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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옵션도 사려면 성당에 방문해서 지성으로 기도를 드려야하는 자리세까지 야무지게 받아먹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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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돈씨 면죄부 강화권. 그돈씨 풀옵션 면죄부. 그돈씨 수도사 자리사기. 그돈씨 기도를 대신 해주는 노예를 사면 축복 8배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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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등 말도 안되는 면죄부 팔이를 하는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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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세부만 이렇게 세세하게 팔아먹었으면 악당이라고 부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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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트루자본주의자의 시조새라고 불리며 지금도 미국에서 물고 빨고 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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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유부녀들만 모아서 파티하고 간통하고 XX 하고 주지육림 유럽판을 개최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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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이 유부녀들을 자기 마음대로 짝을 바꿔주며 자녀 출산하면 아이 아버지가 누군지 신경쓰지 않고 키우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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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가 이걸 알았으면 중국 승상 때려치고 유럽으로 이민가서 교황청 대주교가 됐을겁니다.

​

여기서만 끝났으면 그냥 중국황제랑 비슷한데?로 끝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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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3P 이벤트라거나 천한것들은 죽어봐야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기는 커녕 부활따위도 없다 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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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어딨냐? 천국이고 에덴동산이고 다 거짓이고 내가 있는 여기가 바로 인세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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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소리까지 했다는데 아무래도 뒷부분은 필립 4세가 교황을 간접살해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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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거짓으로 꾸며냈을거라는게 학계의 정설이지만

​

오피셜이 뭘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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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말을 해도 충분히 그랬을것! 이라고 믿을만큼 보니파시오 8세는 막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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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필립 4세는 왜 교황청을 공격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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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화신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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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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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4세는 벨기에 땅인 플랑드르(현 플라망) 라는 지역을 너무너무 갖고 싶었습니다.

당시 플랑드르의 핵심지역은 브뤼허와 헨트 지역이었고

​

칼레는 잉글랜드 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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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는 그때 플랑드르 백국이라고 불리며 백작이 왕처럼 군림하는 지역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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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방직이 발달해서 옷감을 잉글랜드 프랑스에 잘팔아먹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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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와 프랑스를 두고 삼각무역으로 돈을 쓸어담으며 상업적으로 매우 발전한 도시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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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에서도 이 부분이 잘 반영되서 이 지역에서 유리구슬과 양모와 레이스 잔뜩 사고 영국 대포까지 싹 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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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쪽에 팔아치우고 거기서 캐비어와 어쩌구 저쩌구들 사서 또 팔고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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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그래서 필립 4세는 저 지역을 차지하면서 돈도 갖고

​

동시에 자꾸 프랑스 땅에 영역을 키우는 잉글랜드를 감싸먹는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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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에가서는 칼레땅도 프랑스가 먹어치웠으면 하는 속셈이었던거죠.

​

그래퍼 벨기에를 공격하긴 해야하는데

​

당시 십자군 원정에 이어 신성로마제국과도 전쟁 중이라 돈이 없었습니다.

​

당시 유럽은 이렇게 곳곳에서 죄다 전쟁을 했기 때문에 유럽인들은 더더욱 종교에 매달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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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면죄부가 더더욱 잘팔리는 악순환의 반복이었죠.

​

그래서 필립 4세는 플랑드르 지역과 전쟁하기 위해 돈을 어디서 구할까를 고민해보니...

​

보니파시오 8세라는 막장 교황이 민심을 다 잃어 가는 중이었던거예요.

​

원래같으면 하기 힘든 생각이지만 이때 필립 4세가 후추 안뿌린 썩은 고기 먹고 뇌가 맛이 갔는지

​

교황을 공격에서 돈을 뜯자!! 라는 생각을 합니다.

​

당시 교황청이 십자군 원정을 핑계로 키우던 사병군대인 성전기사단이 있었습니다.

​

교황이 타락했으니 당연히 성전기사단도 타락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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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성전기사단의 주요 업무는 만만한 귀족이나 농노들에게 삥뜯기를 시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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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도 땅에 사는 여자를 납치해서 다른 지역 귀족에게 팔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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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면 교황에게 바치는 역할을 하는 사실상 노예 무역을 하며 돈을 쓸어담았는데

​

필립 4세가 바로 이 부분을 명분으로 삼습니다.

​

성전기사단이 이교도 땅에서 노예무역을 하는데 그냥 순수하게 노예무역만 하겠냐!

​

분명 여자 노예와 이렇고 저렇고 입으로 꺼내기 민망한 짓을 했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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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도와 동침을 하다니! 이 역시 이교도 오랑케들이나 하는 짓이니 내가 혼내 주겠다!!!

​

라며 성전기사단을 공격해서 돈을 빼았습니다.

​

이야기 했듯이 성전기사단이 단순 노예무역만 하는게 아니라 교황의 은행역할 겸 재무관리도 했었기 때문에

​

교황의 재산도 삥뜯는겁니다.

​

보니파시오 8세가 너무 빡쳐서 필립 4세를 파문해버리는데

​

필립 4세는 하인리히 4세의 카노사의 굴욕을 알고 있었기에 반격 준비도 다했습니다.

​

필립 4세가 교황 악행 백서를 책으로 써서 전 유럽 귀족에게 다 돌려버립니다.

​

거기에 바로 교황이 교황직도 돈으로 샀으며 귀족집 유부녀들과 간통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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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부녀를 갖기 위해 남편 귀족들을 십자군 전쟁으로 몰아넣어서 죽이고

​

동성애파티까지 한다 카더라!!

​

라고 썼던거죠.

​

그래서 보니파시오 8세의 악행이 역사적으로 너무 뚜렷하게 기록이 남았는데

​

학자들이 아무리 그래도 동성애는 아닐것이라고 하지만

​

면죄부와 유부녀 간통은 딱히 부정을 안했...

​

보통 같으면 파문 당한 왕이 뿌린 책따위 받는것만으로 신성모독이었겠지만

​

보니파시오 8세가 한짓거리들이 너무 많았는지 이때 전유럽의 왕이나 귀족들이 딱히 교황편을 들지도 않습니다.

​

필립 4세의 교황 악행 백서는 자기 변명이기도 했지만 현재 민심 파악용이었던거예요.

​

이것도 외우세요!

​

아무튼 민심 확인한 필립 4세는 여기에 용기를 얻어서 그대로 군대를 끌고 로마를 공격합니다.

​

이미 성전기사단이 없는 마당에 로마는 그냥 방어벽따위 없는 프리패스 똥땅이었던거죠.

​

필립4세...의 종자가 교황을 붙잡고는 귀싸대기 때리며 이 더러운 탕자야!! 라고 욕을 합니다.

​

그런데도 주변에서 아무도 말리지 못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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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충격받은 교황이 한달만에 죽어버립니다.

​

필립 4세는 이렇게 얻은 돈으로 드디어 벨기에의 플랑드르 백국을 공격하는데....

​

그 지역 민병대에게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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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때려잡은 필립 4세 정예군을 때려잡은 벨기에 민병대의 전투력은 대체....

​

솔직히 저는 필립 4세가 왜 프랑스에서 성군 취급 받는지 모르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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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그놈의 레볼루숑 정신이 교황을 두들겨 팼다는데 가산점을 너무 많이 부여한거 아닐까 싶습니다.

​

물론 군사학적으로는 의미가 깊은데

​

막강한 필립 4세의 기병대를 막기 위해 플랑드르 민병대는 수로를 만들고 진흙탕을 잔뜩 만들었으며

​

이미 그때가 되면 기병기사단은 팔랑크스 방진으로 가속도 없는 기병대 따위 궁병에게는 거대한 표적지라는 대응도 있었지만

​

무엇보다 교황청마저 깨박살낸 필립 4세가 고작 민병대라는 생각에 방심을 한것까지 여러가지가 겹쳤기에 패배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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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밀덕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재미없는 이야기는 넘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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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필립 4세가 너무 쪽팔렸는지 2년뒤에는 배를 끌고가서 공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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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 지역 정복은 못하고 배상금을 받는걸로 끝나긴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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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왜 필립 4세가 정복군주인지...? 교황청을 정복해서 그런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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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교황이 죽었으니 다시 교황을 뽑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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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는 몇몇 유력가문이 돌려먹었는데 문제는 그 가문들... 보니파시오 8세가 죄다 학살해서 멸문되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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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본격적으로 신앙심 깊고 인망있는 진정한 교황을 뽑아보자! 는 개뿔이

​

보니파시오 8세 말고 무난하고 착한 교황을 뽑자고 허수아비를 뽑는데

​

그마저도 필립 4세가 영향력을 발휘해서 프랑스인 교황이 뽑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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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마인 교황이 없던건 아니었지만 이번 교황은 프랑스의 입김을 너무 강하게 받은 허수아비 교황이었다는게 문제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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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뽑힌 교황 클레멘스 5세는 이미 교황청 돌아가는것도 그렇고 분위기 파악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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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끌려가면 바지사장은 기본이고 일단 프랑스 눈치보다 때가 되면 자길 죽이고 다른 교황뽑겠구나 생각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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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교황인데 로마로 안가는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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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게 오바하거나 오해한건 아니고 거의 확실한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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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눈치빠르고 영민한건데 처세를 잘못한거죠. 이것도 외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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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 가지 않는 수준이 아니고 아예 교황청을 프랑스로 옮기겠다고 말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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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비뇽의 유수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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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의 유수는 한번이 아니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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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스 교황 이후 7번이나 교황들이 아비뇽에서 교황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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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클레멘스 교황이 눈치빠르고 영민하다고 했죠? 처세만 좀 못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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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똑똑한데 처세는 못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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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서울대 가고 의대갈 정도로 머리좋고 공부잘하는데 일머리는 왜 이따구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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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교황청을 아비뇽에 정한 이유가 로마에서 떨어졌지만 기회를 봐서 로마로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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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프랑스왕이있는 파리에서는 멀리 떨어져있었는데

​

당시 아비뇽 지역은 프랑스 땅이긴 한데 이 지역이 사보이공국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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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왕에게 충성은 하지만 신성로마제국과 더 가까워서 독일과 더 얽힌게 많은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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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프랑스 간섭과 로마제국의 간섭을 받기 싫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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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위기의 상황에서는 신성로마제국의 도움은 받아 볼 수 있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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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나름 머리를 썼죠? 간섭받지 않고 오직신앙!만 추구할 수 있겠다는 머리 굴린 흔적은 보이는데 근본이 잘못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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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은 물론 카톨릭 신자들인 평민들 조차 로마로 가지 못하는 교황에 대한 인식은 교황 왜저래? 미쳤어?

​

이렇게 되는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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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권리도 누릴 수 없다. 외우세요.

​

유수 라는 단어는 성경책에 있는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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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의 유수라는 말에서 시작된거예요.

​

유는 유배할때 유고 수는 죄수할때 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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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대중들의 교황을 바라보는 시선은 지금의 교황은 원래 자리로도 못돌아가는 유배온 죄수로 보인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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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인 역학관계에만 신경쓰다보니 교황의 상징을 잊어버린 그런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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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이후로 7명의 교황이 로마도 안가고 이런데서 한 70년정도 있다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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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카톨릭에 대한 신뢰만 꺼져가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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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권위를 잃어버린거예요.

​

그리고 이제 카톨릭 몰락의 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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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교황의 시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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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이 흐르면서 카톨릭은 이제 프랑스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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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보니 다른 유럽국가들에서는 교황이 왜 프랑스에 있나?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요.

​

영국 스페인 기타등등 다 그랬지만 특히 신성로마제국이 강하게 불만을 품습니다.

​

마지막 7대에서 그레고리오 11세 교황이 로마로 가야겠다는 생각을합니다.

​

이 시기에는 프랑스 안에서도 파벌이 나뉘어요.

​

교황은 로마로 돌아가야한다와 프랑스에 남아야한다로 나뉩니다.

​

더 웃긴건 로마안에서도 파벌이 나뉘어요.

​

교황은 당연히 이탈리아 사람이어야 한다. 프랑스 교황은 오지마라.

​

뭔 개소리냐. 교황은 일단 로마에 와야한다.로 나뉘어요.

​

진짜 개판이죠?

​

어쨌든 그레고리오 교황은 로마로 가기로 결정을 하는데

​

모든 유럽에서 파벌에 따라 교황이 가는길에서 전쟁을 합니다.

​

교황이 로마로 가는걸 막으려는 쪽에서 보내는 용병을 막으려고 또 용병을 구한다를 이유로 계속 싸워요.

​

교황이 정말 힘들게 피를뿌리면서 기어이 로마에 도착하는데 도착하고 얼마안되서 암살당합니다.

​

진짜 인생무상...

​

클레멘스 교황도 이럴줄알고 로마 안가고 아비뇽에 남은거였거든요.

​

어쨌든 교황이 죽고서 이탈리아 출신의 교황을 다시 뽑습니다.

​

이걸 보고 프랑스에서 교황의 시체라도 돌려줘라! 하며 프랑스가 후송대를 보냈는데 로마는 그것도 반대합니다.

​

프랑스가 빡쳐서 로마에 반기를 들고 아비뇽에 다시 한번 교황을 세웁니다.

​

이렇게 교황이 2명이 됩니다.

​

이것이 대립교황의 시대입니다.

​

이제 모든 유럽에서 각자 자기들이 인정하는 교황이 나뉘기 시작해요.

​

그리고 결국은 교황끼리 전쟁을 합니다.

​

교황 대신에 왕들이나 대귀족이 싸우는 대리전이 아니고 진짜 교황끼리 직접 군대를 이끌고 이탈리아 북부에서 전쟁을 합니다.

​

이때 로마쪽 교황이 전투할때 부상을 입고 그것때문에 죽어요.

​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집니다.

​

이 지경이 되니까 전쟁을 하는 교황들도 이게 맞나? 싶어서 교황청을 하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해요.

​

초대 대립교황들은 서로를 증오해서 전쟁을 했지만

​

나중에는 전쟁을 관성적으로 하다보니까 교황을 합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거예요.

​

진짜 소림사도 이렇게는 안하겠다 싶긴한데...

​

그러던 와중에 로마쪽 교황이 이노센티우스였는데 이 교황의 부하중 한명이

​

교황을 1명을 뽑아야 한다면 지금 교황 동시에 둘 다 물러나고 새로움 교황 1명만 뽑아야한다고 말해요.

​

부하가 이렇게 말하니까 교황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

단일화는 해야겠지만 당연히 내가 혼자하는 그림을 그리는건데 부하가 눈치없게...

​

그래서 파토가 나서 그냥 대주교들끼리 모여서 우리가 차라리 뽑겠다.

​

우리가 뽑은 한명만 교황으로 하자하고 파벌에 속하지 않은 교황을 뽑아요..

​

그게 알렉산데르 교황입니다.

​

웃긴건 이렇게 뽑았는데 아비뇽이나 로마쪽 교황이 전부 받아주지 않아요.

​

그래서 단일화 하려는 시도는 교황3명으로 결과가 나옵니다.

​

이게 바로 킹덤컴 게임의 배경이예요.

​

교황이 3명인 시대... 바로 이때입니다.

​

보헤미안 왕국. 지금의 체코땅에 얀후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

종교개혁의 아버지.

​

대부분 종교개혁의 시작을 칼뱅이나 루터로 알겠지만 칼뱅은 자존심 강한 프랑스 사람이라 아니긴 하지만

​

루터는 얀후스의 영향을 크게 받은 사람이예요.

​

한국에서 루터는 몰라도 얀후스가 유명하지 않은건

​

한국 개신교가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미국 개신교가 칼뱅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입니다.

​

무엇보다 자세하게 들어가면 복잡하지만

​

루터파의 시작인 얀후스쪽 개신교는 기본적으로 국가권력을 따르라는 순수 정통 게르만족 같은 느낌이 강하다면

​

칼뱅파는 부당한 권력에는 저항해라! 라는 프랑스다운 교리이고 이게 또 미국 입맛에 딱 맞겠죠!?

​

문제는... 한국인들 성향은 루터파라고 해야할지 국가권력에 순응하기를 좋아하는데...

​

정확하게는 니들은 국가에 다 순응하고 질서를 지키고 튀지마라! 나는 내 멋대로 살겠지만...

​

이긴 한데 아무튼 한국인 성향과 칼뱅교리는 조금 많이 안맞는데 그러다보니 한국 개신교가 자기 모순에 빠진게 아닌가 하는...

​

음모론 축에도 못끼는 루딩 개인 의견은 여기까지!

​

얀후스는 신학을 강의하는 교수입니다.

​

정확하게는 사제는 아니고 교수입니다.

​

특히 특이한건 이 사람은 귀족출신이 아니고 평민출신입니다.

​

이 사람의 성이 후스입니다.

​

후스는 게르만어고 영어로 구스입니다. 거위예요.

​

이름만 봐도 귀족스럽지는 않죠?

​

평민 출신인데 겁나 똑똑했나봅니다. 당시에 사제가 아닌데도 신학강의를 하는 교수님이었으니.

​

어쨌든 얀후스는 대립교황같은 꼬라지를 보고는 카톨릭은 타락했다고 생각하며

​

기독교의 순수성을 연구하다가 내린 결론.

​

오직 성경!!! only bible!!!

​

이런게 나온 이유가 기독교나 성경의 말씀. 예수님의 의지.

​

아예 인간의 정치적 입장 이런걸 싹빼야한다.

​

교황을 볼게 아니라 성경만 봐야한다. 애초에 왜 교황청이 지들 멋대로 성인 지정하고 자빠졌냐.

​

외경이니 뭐니 하는 라이트 노벨은 뗼감으로나 써라!

​

라는식으로 꽤 강경하게 나갑니다.

​

이런 강의를 하다보니 대립교황 시대에 지친 레알 신상추구하는 기독교인들 중에 추종자들이 생겨납니다.

​

그리고 이 시기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벤체슬라스가 등극합니다.

​

황제로 등극할때 대관식을 로마에서 했었어요.

​

근데 벤체슬라스는 대관식에도 안갔어요.

​

나름 명분이 있었는데 어떤 교황한테 가서 대관식을 가야하냐?를 핑계댔습니다.

​

당연히 너무 핑계인게 대관식 안가고 주색잡기만 빠졌습니다.

​

게다가 어느 교황을 지지한다 라는것도 없었어요.

​

물론 귀족들 사이에 파벌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황제가 방향을 잡아줘야하는데

​

대관식을 안가고 하는짓이 정치적인 의논이 아니라 주색잡기를 하는거예요.

​

참고로 당시 벤체슬라스가 핑계를 대기를

​

요즘 민중들에게 인기 있는 얀후스가 하는말에 따르면 오직성경. 성경말씀을 따라야 한다더라.

​

대중들도 그러하니 나도 하나의 교황을 지지하기보다 좋은게 좋은거. 오직 성경! 말씀이나 잘 따르자.

​

뭐 이런 소리를 해요. 이때까지만 해도 얀후스는 이교도 취급은 아니었고

​

오히려 인기있고 좋은말 하는 조금 특이한 인간?? 수준이었습니다.

​

왜 요즘도 있잖아요? 말 재미있게 하고 민중들이 유행처럼 따르는 종교지도자들.

​

하지만 얀후스는 그런 인기있는 종교지도자와 다르게 특이했던건 얀후스는 사제가 아니었는데 사람들에게 신학을 알려준다는점.

​

그리고 이게 핵심인데. 얀후스는 성경책을 체코어로 번역을 했습니다.

​

대중들에게 성경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였죠.

​

이 2가지가 핵심이고 그외 자잘한 특이한점은

​

부활절에 사제들이 만든 빵과 포도주를 먹으면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의식같은거 지금도 교회에서 부활절때 하죠?

​

아무튼 이 거룩한 행사를 하는데 중세시대때는 빵과 포도주는 사제만 만들수 있었고

​

특히 사제를 제외한 사람이라면 빵만 먹고 포도주는 사제만 마셔야 한다던가

​

아무튼 이런 복잡한 절차가 있었는데

​

얀후스는 민중들과 함께 같이 빵과 포도주를 만들고 같이 먹었어요.

​

뭐 이런식으로 특이한 것들이 있다보니 대중적으로 인기가 폭발한거였어요.

​

한마디로 특이하다고 했지만 이게 교황청에서 볼때는 이단적인 행위였던거예요.

​

다만 이때 얀후스를 이단으로 지정하지 않았던건

​

그런 사소한 문제보다는 교황 3명인것 부터 해결해야해서 일단 놔둔거예요.

​

그런데 벤체슬라스는 얀후스가 특이하다가 아니라 오히려 친화적인 발언을 하고

​

심지어 대관식 참여 안한 핑계로 대기까지 했잖아요.

​

교황청이 딥빡했고 당장에라도 마녀사냥... 이 아니라 마놈사냥을 하고 싶었지만

​

아무튼 교황 3명인걸 해결하는게 지상과제였습니다.

​

그런데 이때 벤체슬라스의 이복동생이었던 지기스문트. 헝가리왕이 위기감을 느껴요.

​

이때는 신성로마제국 체코 헝가리가 전부 게르만족의 국가였고

​

서로 다 게르만어를 쓰고 있었는데

​

헝가리만 조금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

​

특별한 점은 뒤에 이야기 하고 어쨌든 고구려 백제 신라 느낌으로

​

다 같은 민족에 같은 언어를 쓰지만 통치하는 왕은 각자 있고 그러면서 왕가는 똑같은.

​

어쨌든 지기스문트는 형이 맛탱이 갔는데 더욱이 교황에게 트집잡힐 만한 발언까지 했으니

​

이러다가 정치적 혼란으로 게르만 국가가 귀족 파벌에 의해 내란이 발생할 수 있겠다 생각을 해요.

​

참고로 이때 신성로마제국의 왕가는 룩셈부르크 왕가입니다.

​

합스부르크 왕가는 이 다음입니다.

​

그럼 정리를 하자면 신성로마제국은 지금의 독일과 오스트리아예요.

​

여기에 보헤미아왕국은 현재의 체코지역 입니다. 헝가리는 그냥 헝가리입니다.

​

벤체슬라스는 보헤미아 왕국의 왕​​이며 신성로마제국 황제입니다.

​

지기스문트은 헝가리 왕이예요.

​

그럼 위에 말한 헝가리가 특별한 상황이었다는걸 설명하자면

​

이때가 1300년대 후반인데 이 시기로부터 100년전에 세계사 대격변. 데우스엑스마키나.

​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이 유럽을 침공한 이후입니다.

​

그리고 그 아들 주치가 유럽까지 공격했다가 징기스칸 사망으로 물러난일이 있었죠?

​

몽골군이 헝가리까지 공격했다가 물러난거예요.

​

이때 뭐 키예프공국 망하고 타타르의 멍에.는 물론

​

중동이라고 할지 이슬람문화권이라고 할지. 아예 한 지역이자 문화권 전체가 초토화 당해버리고

​

이 부분 자세한건 징기스칸4 게임을 해보시면 다 알수 있습니다.(20세기 코에이는 신이었...)

​

어쨌든 헝가리는 원래 순수 게르만 국가였지만

​

몽골침입으로 이슬람 왕국들이 죄다 망하면서 몽골을 피해 도망쳐온 이슬람애들이

​

헝가리로 엄청 많이 몰려와요. 어떻게 보면 난민이죠.

​

조금 왔다가 아니라 정말 많이 옵니다.

​

애초에 헝가리나 폴란드도 몽고의 공격을 받았다가 망할뻔 했었는데 징기스칸이 죽어서 살아남았구요.

​

참고로 이때 헝가리는 지금의 크로아티아 루마니아지역까지가 헝가리입니다.

​

그러니까 지기스문트가 왕일때 헝가리 땅도 넓었지만

​

얼마전까지는 순수 게르만 국가 가끔 슬라브 섞여있음. 이정도였다면

​

지기스문트 시절에 이미 다민족 국가가 되요.

​

게르만 + 몽골인 + 중동쪽 이슬람인

​

게르만이 비율만 보면 제일 많기는 했지만

​

슬라브도 있고 투르크계열 또는 중동애들을 다합치면 게르만족과 비슷하거나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

당시에 제대로 된 인구조사가 없었으니 정확한건 알 수 없었겠지만요.

​

이런 배경들이 뭉치고 뭉쳐서 히틀러를 뽑은 나치를 지지하는 독일인들이 순수 게르만이니 레벤스라움을 그렇게 부르짖었던겁니다.

​

단순히 인종차별에 미친게 아니라 이 시기의 역사부터가 사실상 현재 독일의 문화까지도 굉장히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죠.

​

유럽에서도 프랑스보다도 더욱 많이 외국인 노동자나 난민을 많이 받는 배경이 다 있는겁니다.

​

아무튼 이 시기 이러다보니 이때는 이미 헝가리 안에서 서로 다른 언어에 다른 문화권에 있었어요.

​

딱하나. 카톨릭 국가라는건 탄탄합니다.

​

아마 한국인들에게 유럽역사가 어렵고 복잡한게 이런 부분일거예요.

​

저도 처음에 유럽역사 배울때 왕조가 어쩌구에 종교가 어쩌구에 다민족 어쩌구 그리고 왜 왕을 외국에서 수입해오나등등

​

생소한 문화권을 이해하는데 어려웠는데 이건 단순히 한국인이 익숙하지 않아서도 있지만

​

사실 이런건 유럽애들도 어려워합니다.

​

동시에 지금 미국이 가진 가장 큰 문제가 이런것과 유사하죠.

​

대충 음모론 3부에서 무슨 이야기가 다 폭발해서 루딩식으로 비빔짬뽕밥이 될지 예상 되신다면

​

당신은 꼰미 레벨 5!!

​

그리고 3부에서 이야기 자세하게 하겠지만 저는 한국이 고금리시대를 넘어 다음 세계대전에서 살아남는걸 넘어서서

​

최강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가는게 아니라 정면 돌파해야할 문제가

​

다민족 다문화라고 확신합니다.

​

지금처럼 순수 비난과 배척으로 외국문화 나가라 외노자 꺼져라 같은 3류 찌질이 같은 생각만 하면서 살면

​

혼자만 도태되는게 아니라 국가 자체가 그냥 중국에게 흡수당하고 300년쯤 지나면 한민족 자체가 역사서에 남아나 있을까 싶어요.

​

K 문화 유행이니 뭐니는 그 다음문제라고 봅니다.

​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한국이라는 국가에 애국심을 가진 다민족 다문화 타민족 언어 사용등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

금융시대의 최강국가는 가까워지다 못해 필수요소라는걸 확신합니다.

​

그래서 1부에서 미리 배경 설명을 조금 자세하게 하게되네요.

​

찰스브로슨 이라는 배우가 있어요.

사진처럼 생겼습니다. 유럽 다민족 국가를 상징하는 외모입니다.

​

본인 스스로가 내 얼굴은 다이나마이트에 폭파된 광산같이 생겼다고 할정도예요.

​

이 사람은 리투아니아 태생의 미국인인데

​

리투아니아도 당시 몽골침입에 중동 중앙아시아 혹은 카자흐스탄이나 우크라이나에서 난민이 엄청 몰려와서 피가 많이 섞였거든요.

​

심지어 아예 몽골피를 이어받은 사람들도 있었고.

​

그러다 보니 이런 동양적 외모의 백인이 존재하는거예요.

​

당시 헝가리가 이런 외모릐 사람들이 많았고 지금 헝가리도 그렇다보니 분명 독일 역사를 공유하고 게르만 민족성과 문화를 가졌는데

​

외모는 독일인 같이 안생겼다거나 하는 일이 생기는거죠.

​

어쨌든 이 시절의 헝가리는 유럽에서는 보기드문 다민족국가였다는거!

​

참고로 중국도 이런거 많습니다.

​

당나라 시절부터 그 이후 5대 10국 시절까지 수많은 이민족들이 중국 한족과는 확실한 선을 그으면서도

​

그 문화권에 익숙해져버린.

​

만주족은 딱봐도 동아시아 외모지만

​

당나라 자체가 선비족이 세웠다고 하는데 선비족도 동아시아의 한 민족 개념이라면

​

백인의 외모에 이슬람 문화라같은게 이미 당나라때부터 자연스럽게 스며들어들고

​

한족과 혼혈을 하며 소그드인 사타인 기타등등 오만 다민족이 중국에 정착해 살았었잖아요?

​

대표적으로 한국인 배우중 한명도 한국의 즐라탄이라는 소리를 듣죠?

​

거기서 조금만 더 백인 외모에 가까워지면 그게 소그드인입니다...

​

잡담은 여기까지 하고!!

​

아무튼 어쨌든!! 이때 헝가리 왕 지기스문트는 그 이민족들 쌈박질 날테니

​

기독교만 믿으면 모두 헝가리인으로 받아주겠다를 제대로 실천해서 국내 갈등을 잡으려고 했어요.

​

잡으려고 했다는건 못잡았다는 소리고 지기스문트때 그만큼 국내갈등이 말도 못했다는겁니다.

​

평민들은 딱히 싸우는 일이 없이 지기스문트 충성도가 높았는데

​

귀족들이 문제였어요.

​

일단 크로아티아 지역이 있고 그 옆의 세르비아와 보스니아가 있었는데

​

이 둘이 카톨릭이 아닙니다. 보스니아는 카톨릭이 아니다를 넘어서 토속종교 뭔가를 믿었어요.

​

그래서 맨날 전쟁을 하는데 지기스문트는 제대로 신경을 못써줬어요.

​

애초에 뼈속까지 기독교인인 지기스문트가 기껏 자비있게 타종교 타문화를 이해한다고 해봐야

​

21세기 현대인들 조차 타종교 타문화를 배척하는게 말도 못하는데 그게 됐을리가...

​

그래서 보스니아는 바다건너 이탈리아 땅의 나폴리왕에게 통치해달라고 하고 싶어하는 상황입니다.

​

그러나 나폴리왕은 이미 지기스문트와 짜웅했기 때문에 당연히 보스니아를 돕지 않았고

​

지기스문트가 자꾸 기독교 믿으라며 침략하려는게 보이자

​

적의 적은 친구! 보스니아는 오스만제국과 손잡고 지기스문트와 싸웁니다.

​

그런데 지기스문트가 이 전쟁에서 졌어요.

​

물론 보스니아는 오스만제국에게 정복당하는 고종엔딩으로 마무리 되면서 피똥싸는 지배역사가 시작됩니다.

​

그나마 다행이랄까 평민들은 지기스문트에게 나름 친근감 느끼고 신뢰하고 있어서 어느정도 국내를 안정시키긴 하지만

​

그럼에도 계속 오스만 제국이 공격하려고 하니까 전쟁자금이 필요하고

​

얀후스때문에 교황청에게 찍힐것 같은 상황.

​

복잡하죠?

​

이렇게 복잡해지고 뭐가 뭔지 알기 힘든 권력 역학구조가 발생한건 결국

​

절대 권력인 교황청이 유럽왕들을 십자군 원정으로 힘을 다 빼놨으니

​

왕들이 결국은 교황에게 숙이고 들어가야하지만

​

정작 그 교황청이 타락하고 몰락한데다 사람들의 신망을 잃으니

​

기독교를 안믿겠다는 유럽국가들이 하나 둘 생겨나는 중에

​

가뜩이나 기독교는 이슬람과 성전을 치루는데

​

저쪽 동방의 절대재앙 몽골군이 이슬람 문화권을 완전 박살냈지만

​

정작 그 몽골이 이슬람을 받아들여서 새로운 민족구성의 이슬람 국가가 되면서

​

또 다른 기독교 문명권을 위협하고 있으니

​

기존의 기독교 교리나 법률체계나 기술력이나 기타등등 이해력으로는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 없는거예요.

​

이 설명마저 조금 복잡할 수 있는데... 음모론 3부까지 가면서 최대한 풀어서 써보겠습니다!

​

원래 그래서 음모론은 방송으로 해야 그나마...

​

어쨌든 빠르게 글을 마무리 하자면

​

결국 지기스문트가 결단을 내립니다.

​

얀후스를 정리하고 벤체슬라스도 끌어내려야 겠다.

​

게르만 왕국을 안정시켜야 한다!!

​

그래서 보헤미아왕국에 있는 벤체슬라스를 공격해서 끌어내립니다.

​

순간적으로나마 신성로마제국 황제 보헤미아왕 헝가리왕을 지기스문트가 다 통합해버립니다.

​

독일 역사상 사실상 최초의 통일과 같은겁니다.

​

한국으로 치면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시대에 신라가 통일을 한겁니다.

​

그런데 그 신라가 고구려땅은 당나라에게 뺏긴게 아니라 그 삼국 영토를 통으로 먹은 수준인겁니다.

​

마치 한국에서 환빠들이 그렇게 바라던 여기도 저기도 한민족 국가라고 우기는...

​

왜 이런소리하냐!

​

이게 독일역사에서 엄청 중요한 사건이예요.

​

한순간이나마 게르만족의 거대 제국이 탄생한건데.

​

이걸 기준으로 나중에 30년전쟁 이후 다시 독일을 재통일하는 명분이자 예송논쟁같은 걸 하는데

​

그게 소독일주의 대독일주의입니다.

​

프로이센이 대독일주의. 게르만족의 제국을 만들때 대독일주의를 주장했는데

​

이 기준이 지기스문트 왕이 정복한 땅 전체를 말해요.

​

그러면서 독일 통일전쟁을 하기 시작했고 프리드리히때 완성이 된거고.

​

더 중요한건 이게 발전해서 히틀러때가 되면 레벤스라움이라는 해괴한 사상으로 발전해서

​

히틀러가 선동질한 순수 아리아인 어쩌구 저쩌구하는걸로 발전하거든요.

​

히틀러 사상의 시작이 지기스문트!!??​​

​

왜 환빠 어쩌고 한지 아시겠죠.

​

사실 환빠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전세계 여기저기 보면 이런식으로 국뽕 치사량이 넘쳐 흐르는 사람들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

보통은 이런 사람들은 일반 사회에서도 배척받다 못해 ㅂㅅ취급 받기 마련인데

​

이 ㅂㅅ들이 어떤 일련의 사건과 과정을 지나 운때가 맞으면 또 국론의 한 중심이 되기도 하거든요...?

​

여기서 트럼프, 마가 같은것 부터 떠올리면 그건 루딩식 음모론이 아니라

​

정론 같은겁니다!? 루딩식 음모론은 항상 2차원쯤 더 나가는게 전통!

​

조금 과장은 있지만 정말로 대독일주의 기준이 지기스문트 시절의 영토입니다.

​

한국역사에서 딱 맞는건 아니지만 비유적으로 볼때 통일신라라고 볼 수 있어요.

​

통일 신라 이전에도 한민족 의식은 있었지만

​

통일 이후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확고히 자리잡아서

​

지금까지 이어지고 우리가 지금도 중국과 다른민족 다른역사 주체의식이 생겨서

​

지금 설마 우리가 중국을 사대했다는걸로 중국의 소수민족이라고 생각하는 미친인간

​

이 아주 가끔 돌연변이 처럼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놈은 제가 인천앞바다에 던지기로 하고.

​

어쨌든 독일이 한순간이나마 1명의 왕을 섬기는 상황이 됐지만 여전히 국내 정세가 불안했는데

​

특히 결국 돌고 돌아 얀후스입니다.

​

교황이 지금은 3명이나 있으니까 참견 안하지 1명으로 정리되는 순간

​

얀후스때문에 독일이 이단국가로 찍히고 지기스문트가 파문당할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

그래서 지기스문트는 콘스탄츠 공의회를 열어요.

​

이게 대단한게 교황이 아니라 왕이 공의회 선언을 한거예요.

​

이러면 유럽의 저명한 추기경 대주교들이 다 모여서 엄청 중요한 사안을 결정하는건데

​

지기스문트는 교황을 1명으로 정리하자고 열었는데 여기에 교황청이 응했다는거예요.

​

그만큼 지기스문트의 권위가 대단했었고 이 공의회에 얀후스도 불러요.

​

지기스문트는 얀후스에게 공의회로 오는데 내가 이름걸고 너 보호해줄게 와라! 이럽니다.

​

함정이 아니라 진짜 지기스문트는 보호해주려고 했어요.

​

그런데 팔츠선제후가... 지기스문트에게 과잉충성을 하는바람에

​

공의회로 오는 얀후스를 납치해서 죽입니다.

​

이것때문에 지기스문트 대분노 해버려요.

​

당연히 다른 왕들은 지기스문트 저새끼 저럴줄 알았다 하는데

​

저는 과잉충성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

왜냐하면 지기스문트가 자기 이름 걸고 보호해준다고 공표했고 보헤미아의 얀후스 추종자들도 다 알고 있었어요.

​

이 시기의 지기스문트는 국내적 혼란을 어떻게든 막고 싶어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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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대놓고 그러겠다고 공표했으니 이걸 지켰어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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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얀후스 죽이면 지기스문트가 기껏 통일한 신성로마제국이 갈라지는건 확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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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나 보스니아 하나 먹어보겠다고 쌩지랄하다가 오스만제국에게 털린거 생각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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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후스 하나로 도박할 머저리가 아닐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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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츠선제후가 순간적으로 일본군에 빙의를 한건지 과잉충성을 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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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공의회 결과 기존 3명 교황 전부 은퇴하고 1명을 새로뽑는걸로 로마교황으로 통일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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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얀후스가 죽은것 때문에 보헤미아가 반란을 일으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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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얀후스 전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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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후스 전쟁 이후 30년 전쟁까지는 또 방송에서 역사이야기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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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음모론에 필요한건 대충 여기까지만 해도 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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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하고 싶어도 제가 글쓰고도 지금 맞게 쓴건가? 검토하기에는 글이 너무 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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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학교 과제 같은거 하는게 아니라 검토를 한다는건 가뜩이나 요즘 블로그 글도 잘 못쓸정도로 시간 안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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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도 지금 3일째 쓰고 마무리 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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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2부 글은 최대한 일주일 안에 써서 올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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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2부가 정말 중요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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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음모론 최종결정전은... 차라리 안써버리면 온갖 해석이 가능해지는 미완의 열린결말이 될 수 있을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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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1부는 여기까지 마치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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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도 복잡한 유럽 역사에서도 특히 더 복잡한 독일 역사 신성로마제국 파트의 일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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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교황 시대와 엮어서 쓰다보니 참으로 유럽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사람이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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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요즘 20대들만 해도 삼국지 자체를 안읽는데 그 이유가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 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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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기까지 이야기 한건 삼국지로 치면 십상시가 나오게 되는 배경까지만 설명한 수준밖에 안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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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삼국지 같은 내용은 30년전쟁에서 다 해버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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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비하면 최대한 간추리긴 했는데 너무 간추린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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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진짜 이번 글은 밀덕이 아닌데 어째서인지 밀덕으로 오해하는 분들이 계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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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했다는 부분을 최대한 그냥 한줄로 넘어가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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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도대체 누가? 어느국가와? 전쟁 이라는게 더 헷갈리면 어쩌지? 싶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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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게 또 유럽 역사가 원래 이래서 정작 유럽인들이 자기나라 역사를 모르는애들 태반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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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전공자들만 자기나라 역사 안다고 할 정도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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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비하면 괜히 한국역사 너무 단순하고 한줄기 수준이라며 공부할게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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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유물이나 정부관청 이름이나 외우고 연도로 부족하니 월까지 외운다 같은 소리가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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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도 한국사 본격적으로 파고들면 꽤 빡빡하다는거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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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저는 한국 역사 배울때 왜 만주족이나 여진족등 주변 국가 역사를 자세하게 안배우는지 의문일 지경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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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랑 엮어서 봐야 확실하게 이해가 되는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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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한국에만 초점을 맞춰서 수업을 진행하는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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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또 그렇게 파고들면 유럽역사는 교수들도 자기 파트 아니면 모르는게 투성이일정도로 복잡하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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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전문가이기는 커녕 대다수가 초중고딩 시절 게임을 하면서 애정으로 알아본게 전부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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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사학과처럼은 커녕 그런 역덕들 수준으로도 파보지 못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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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이후는 그저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빠서 일만하는 노비인생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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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 지식은 10대 시절에 알았던 기억을 다시 재정립했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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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2부 글도 기대하실분이 많지 않아도 쓸거니까 그냥 기대하세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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